그리스도
climacus 기록/단편들 2011. 5. 22. 22:32

1 이런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이 서라 하시면 그는 서고 하나님이 가라 하시면 가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었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 일을 나는 시도할지라도 번번히 실패하고야 마는 이 일을 능히 해내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있었다. 2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들레지도 아니하며, 화내지도 아니하였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상한갈대를 꺾지 아니하기를 이길때까지 하였다. . 아아, 그를 본 자는 그의 어떠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불순종의 아들임이 너무나 확연히도 깨달아졌던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악의 존재가 비록 우리의 사랑을 식게한다 할지라도 그것조차 우리의 불순종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우리의 불순종이 정..

동굴에 들어선 왕 이야기
climacus 기록/단편들 2011. 5. 8. 00:46

동굴은 갈수록 좁아져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리고 어느새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를 이 곳에 오게 하고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다고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이 곳은 개처럼 기어서만 지나갈 수 있는 문 입니다. 개처럼 기어서라도 들어가시던지, 아니면 돌아가십시오.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 2 : 4-5

광대
climacus 기록/단편들 2011. 4. 14. 03:13

원수들의 앞에서 원수들을 웃겨야 했던 광대이야기 왕의 명령으로 인해 첩자로 적진에 들어간 주인공은 우연히 적장의 눈에 띄게 되어 적장의 기쁨조가 됩니다. 웃기고 싶지 않은 자를 웃게해야하는 운명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소탈하게 웃는 왕을 보며 인간미를 느끼게 됩니다. 마침내 날이 오고 아군의 군대가 쳐들어 옵니다. 적장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포로로 잡히고 광대는 개선장군으로 귀환합니다. 왕은 광대에게 포상하며 포로들의 처우를 광대장군에게 묻습니다. 광대장군은 자신에게서 부귀영화를 거두셔도 좋으니 그들을 살려달라고 구합니다. 왕이 말합니다. "그래서 너를 보낸 거였다. 저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네가 저들을 웃게하는 것 외에는"

모래의 도시
climacus 기록/단편들 2010. 12. 12. 14:48

이야기 어그적 어그적 식사하던 도중 빵에서 모래가 씹힙니다. 이윽고 그것은 점점 더 심해져서, 마치 빵 전체가 모래인 것 같습니다. ‘뭐야 이게?’ 청년은 빵을 뱉어버리고 다른 것을 입에 넣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깨달았습니다. 빵 뿐이 아니라 이제는 그를 감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모래가루가 날리고 있었습니다. 빵에서도, 그릇에서도, 의자나 건물에서도 모래 부스러기가 부스스 떨어졌습니다. 마치 그가 만지는 것들이 모두 모래로 변해버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는 건물 밖으로 나와 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문득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를 제외한 세상 모두가 모래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더 분명해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모래가 쏟..

그늘에 핀 꽃 이야기
climacus 기록/단편들 2010. 11. 22. 01:36

그늘에 핀 꽃 이야기 그늘에 핀 꽃이 있었습니다. 다른 꽃들처럼 선명한 색도, 아름다운 꽃잎도 가지지 못한 그런 꽃이 있었습니다. 임금님께서 길을 가다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물끄러미 보시던 임금님은 꽃을 꺾어들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꽃은 너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왜 하필 나일까? 나 말고도 다른 예쁜 꽃들이 많은데, 나는 꽃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그저 들풀에 불과한걸' 그 날 밤, 꽃은 임금님의 크고 넓은 응접실에 놓여졌습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방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졌습니다. 꽃은 부끄럽고 어색해서 그늘을 찾아 숨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임금님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에 꽃은 자신의 몸을 흔들었습니..

세명의 신하 이야기
climacus 기록/단편들 2010. 8. 5. 11:32

1 옛날에 궁내대신, 포도대장, 내시가 있었습니다. 궁내대신은 궁을 다스리고 왕의 행사를 준비합니다. 포도대장은 법을 준행하고 왕의 죄수들을 잡아들입니다. 내시는 왕의 곁에서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살핍니다. 2 왕의 생일날이 다가왔습니다. 모두 잔치 준비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왕이 사라졌습니다. 모두들 왕을 찾느라 성과 주변을 샅샅이 찾았지만, 아무도 왕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궁내대신과 포도대장과 내시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궁내대신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내겐 관리해야 할 건물과 사람들이 있는걸, 나는 왕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것들을 잘 관리하겠어’ 궁내대신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처소로 물러갔습니다. 포도대장도 입을 열었습니다. ‘내겐 수호해야 할 법이 있는걸, 나는 왕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