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핀 꽃 이야기

그늘에 핀 꽃 이야기

 

그늘에 핀 꽃이 있었습니다.

다른 꽃들처럼 선명한 색도, 아름다운 꽃잎도 가지지 못한

그런 꽃이 있었습니다.

 

임금님께서 길을 가다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물끄러미 보시던 임금님은

꽃을 꺾어들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꽃은 너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왜 하필 나일까? 나 말고도 다른 예쁜 꽃들이 많은데,

나는 꽃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그저 들풀에 불과한걸'

 

그 날 밤,

꽃은 임금님의 크고 넓은 응접실에 놓여졌습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방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졌습니다.

 

꽃은 부끄럽고 어색해서

그늘을 찾아 숨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임금님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에

꽃은 자신의 몸을 흔들었습니다.

꽃병은 넘어졌고, 꽃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디 숨을 곳이 없을까?'

'나는 이런 영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어' 

 

'달칵'

임금님께서 방에 들어오셨습니다.

임금님은 떨어진 꽃을 보시고 다시 주워서

자개로 장식된 아름다운 꽃병에 다시 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단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 자리에 있어주렴"

 

 

내가 당신께 나를 드리리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당신께서 있으라고 하시는 그 자리가 내 자리이며

당신께서 부르시는 그 이름이 나인줄 내가 믿습니다.

 

당신이 낮추시면 높아질 자가 없고

당신이 높이신 것을 낮출 자가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까지도 포기하리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껍질을 벗고 나아갈 때에야

당신이 나를 만드셨던 그 순간의 나로

당신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왕>이 아닌 <피조물>의 자리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제게 족합니다.

이것이 제게 최고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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