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버전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주는 악

누군가가 원환적인 목적론적 세계를 상정하고 

모든 존재는 그 안에서의 변증법적인 성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세계를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론 적인 세계나 

Dr. Pangloss 버전의 Optimism적인 세계로 인식한다면) 

이러한 현실인식 하에서 그는 

어떤 부정적인 상황도 긍정할 것이고

모든 것을 인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질문

1. 그것은 사실인가?

2. (그것이 참일 경우에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옳은가? 




환란과 고난은 다른 개념인데, 

악을 인하여 맞는 매와 

악을 고치기 위하여 맞는 매는 다른 것이다. 

전자는 진노의 매이고 후자는 사랑의 매이다.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안타까워함이 없다면, 

위의 변증법적인 성장을 상정하면서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사랑의 매는 고침을 만들지 못하고 다음 순간에 사랑의 매가 진노의 매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3년만 기다려 주소서
내가 두루파고 물과 거름을 주리니
열매를 맺으면 좋으려니와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때 찍어내소서. 


아버지의 오래참으심을 가벼이 생각하는 것. 
두려워 함으로 때를 앞당기려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기 합리화 속에 머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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