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반복 1.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기 <엔드리스 에이트>


세상의 정보를 변경하는 것(재창조)이 가능한 스즈미야 하루히.

그녀는 겉으로는 마음껏 방학을 누리면서도,

그녀의 무의식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아 여름방학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 소원으로 인해

8월 24일 정각이 되면, 다시 8월 17일로 전 세계와 사람들의 기억이 리셋되고...

2주간의 여름방학은 반복이 된다.

그러나 단 한명, 시공을 초월한 정보통합사념체, 나가토만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기시감을 통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 쿈이

나가토에게 묻는다. 

"이번이 몇 번째 반복이야?"  

"일만 오천 오백 이십 4번째야."

"우리는 그럼 그 동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거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아. 일만오천오백이십사번의 여름방학 중에 축제에 참가하지 않았던 패턴이 2391번째와 11054번째 두 번 있었어."
그리고 축제에는 갔지만 금붕어 건지기를 하지 않은 패턴이 437번 있었어.  또 아르바이트를 한 것은 9032번이지만, 그 중에서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는 6개의 패턴으로 갈라져 "



반복 2.

시간에 관한 사고실험.

3개의 세계가 나란히 있다.

각 세계는 서로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으나, 그 사이에는 심연이 있어 서로 건너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A의 세계는 1시간에 한 번씩 모든 입자가 정지한다. B나 C의 세계에서 보기에는 A세계는 1시간마다 10분씩 세상이 정지한다. 

B와 C가 이런 이야기를 A에게 해주면, A는 자신들은 관찰할 수 없는 사실을 B와 C가 주장하는 것으로 들린다.

A가 관찰하는 세계A는 한 순간도 멈춘적이 없다. 도리어 B와 C에서 종종 도약이 발생한다.

 

B의 세계는 2시간에 한 번씩 모든 입자가 정지한다. C의 세계가 보기에 B세계는 2시간마다 10분씩 세상이 정지한다.

B가 정지할 때에는 A도 함께 정지하기 때문에, C가 관찰할 때에는 A가 두 번 정지함에도 불구하고 B는 A가 정지한 것을 한 번 밖에 관찰하지 못한다.  

A와 B가 모두 정지해있는 동안에도 C의 세계는 멈추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 


C의 세계는 하루마다 10분씩 정지하는데, 

C가 정지한 10분동안은 A와 B도 함께 정지하기 때문에 어느 세계에서도 그 정지를 관찰할 수 없다. 




A의 입장에서는 B와 C의 시계가 일정 시간마다 도약이 일어나고,

C의 입장에서는 A와 B의 시계가 일정 시간마다 정지한다.



A B C 모두가 정지한 10분동안에 대해서 "세계는 멈추었더라도 시간은 흘렀다"라고 말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도 시간도 멈춘적이 없다/세계도 시간도 멈추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사태에 대해서, A가 정지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A가 정지하는 동안에는 시간도 멈춘다고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은 B와 C가 말해주기 전에는 A 자신은 자신이 종종 멈춘다는 사실을 알 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며, 

A와 B의 정지를 목격하는 C세계조차, 자신의 세계도 A와 B처럼 멈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복3. 

헤라클레이스토스의 격언, 

panta rhei 모든 것은 흐른다. 

세상의 일체의 것은 변화하고, 그 어느 것도 동일한 것은 없다. 라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이세상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반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Ctrl + C ,  Ctrl + V 조차도, 다른 물리공간에 동일한 형태의 것을 구성하는 것일 뿐

물리적인 반복은 가능하지 않다.


실존적인 의미에서라면 다르다. 반복은 가능하다. 

예컨대 변하지 않는 것, 그 곳에 반복은 서식한다. 

1의 예에서 진정한 반복은, 패턴으로 나타난 물리세계의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스즈미야 하루히의 마음,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 

매 회를 거듭할 수록 사건의 모습은 변양되어 나타나지만, 

그것을 일으키고 있는 동인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 유사한 오늘, 

변함 없는 일상 속에서도 변하는 것은 나. 

또는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것은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 않으며, 

어제의 오늘은 흘러가버려 오늘의 오늘과는 다른 오늘이다. 

그럼에도 어제와 오늘에 있어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태도가 그러하다. 

영원에 대하여 변하지 않은 나의 태도-또는 거리가 

내가 물리적으로 달라지더라도 여전히 순간의 존재로 존재하는 동안은 영원과의 거리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어제와 오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의 존재로서의 실존을 반복하고 있다)




문맥상으로는 위의 글과 상관은 없지만,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의견 하나.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에서도 분명히 달라지는 것은 존재한다. 달라지는 것은 반복을 응시하고 있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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