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절망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절망한다. 

하나는 절망하여 자기이려고 하지 않는 나약함의 절망

다른 하나는 절망하여 자기이려고 하는 반성적인 절망이다.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의 논지)




전자는 너무도 구체적이 된, 직접적인 사람의 절망이다.

자기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쳐다볼 힘이 없기 때문에

자기의 어떠함을 무시하려, 잊으려 한다. 

매 순간 자신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들을 찾아

자기자신의 어떠함을 잊으려 하는 방식의 절망이다. 







후자는 반대로 너무도 추상적이 된, 정신적이 된 사람의 절망이다. 

자기자신의 어떠함을 발견한 그는

자기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는, 

도리어 (거짓된)자기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이래, 이것이야말로 나야, 이것이 아니고서는 나라고 할 수 없어

라고 하면서 오히려 가시와 고통 속에 머문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시와 고통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남들에게 동정을 받을 때까지 비운의 주인공으로서의 자기를 고집하는 방식의 절망이다. 









인간은 구체적이되거나 추상적이 될 때, 

자신을 잃어버린다. 

이 두 가지의 절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 볼 만한 또하나의 구분.

아더핑크의 <인간의 전적타락>에서는

인간의 죄를 자범죄와 고범죄로 구분한다.  

자범죄는 선한 뜻을 품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동을 하게되는 경향을 뜻하고,

고범죄는  적극적으로 악을 품는 경향을 뜻한다. 





키에르케고르와 아더핑크의 구분의 공통점은, 

전자는 육체의 약함으로 인한 소극적인 악을, 후자는 의지로부터 나오는 적극적인 악을 표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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