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의 일상

언제 전두표는 행복합니까?


"나를 알아주는 이와 이야기를 할 때, 

그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줄 때 행복합니다."


"나를 믿어주었을 때,

내가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라는 이유만으로 믿어주었을 때 기뻤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과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한 번도 나를 무시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할 때

예의 바른 사람, 겸손한 사람과 일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하려고 한다. 저렇게 하려고 한다. 미리 언질을 주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은 나로 염려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해줍니다. "


-> 그러나 나는 남들에게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망가지는 것을 기뻐할 아비가 어디 있을까요?

내가 하루를 빼앗길 때마다, 가장 분통이 터질 분은 하나님이 아닐까요?

당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더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여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너무나 복장터질 소식입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원칙이 있으신 분이시고, 상식이 있으신 분입니다. 

제가 당신을 알아드리지 않고, 제가 상상한 대로, 제 멋대로의 헛된 망상의 하나님을 가지고 행동해 놓고 상 받기를 바란다는 것이

당신께 얼마나 화딱지가 날 일인지요.


당신께서는 일을 가지고 뭐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요

제 상태가 당신을 아프게 하고, 불쾌하게 하고, 진노하게 한다는 것을 안 이상,

당신의 정답 외에는 당신께 도달할 수 없음을, 당신의 방법 외에는 당신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음을 안 이상

제가 그 상태에 이르기 원합니다. 

제가 그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정답을 적어 내겠습니다.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라>

<하나님을 필요로 하라>


피조물이 피조물의 위치에 가는 것이 뭐가 이렇게 힘들고 고된지요. 

그 당연한 것을 왜 이렇게 ..




애통함이 임했을 때ㅡ,


감사로 반전을 찾으려는 것이

오히려 애통함의 쓴 열매를 맛보지 않고 삼켜버리는 것이 되어

낫지 못하게 하는 약이 됩니다. 


애통함이 임했을 때에는

옷을 찢고 재 가운데 "가만히" 곱씹으면서

고난의 쓴 맛을 다 겪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임하기 전에

저 스스로 당신의 은혜를 찾아나서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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