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재구성

기억이 다양한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 이유는 조각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이 통째로 저장된다면 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뇌는 효율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키워드 중심으로 적절히 여러 폴더에 분배해 놓았다가 필요한 시점이 되면 끄집어내서 재구성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입력한 시점보다는 기억을 인출해 내는 시점의 감정이나 처지, 판단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한 연결되지 않은 필름 조각을 보고 그사이의 이야기를 전체적인 개연성에 따라 재구성한다. 그러려면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개인의 우화(personal fable)라고 부른다.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현재의 시점에 과거를 끼워 맞추는 경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결국 기억의 왜곡은 현재의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가 재구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기억의 진실성이야 어떻든, 지금 이 순간 괴로움을 경험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언제나 드라마가 있는 이야기 속에 과거를 늘어놓는다. 시험에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면, 자신이 영웅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어려운 상황과 친구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공부에 집중했고, 극적으로 도움을 얻어 시험을 잘 본다는 스토리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이에 반해 저조한 성적이 나온다면 당연히 자신이 피해자가 되고,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줄거리를 전개하며, 과거의 일도 모두 그 결과를 중심으로 늘어놓아 변화시킨다. 이를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이라고 하는데, 이때 일어나는 기억의 변경을 자기중심적 기억 왜곡이라고 한다. 이렇듯, 인간은 현재 처해 있는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기억을 왜곡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건이 정말 그러했으리라 굳게 믿는다. 더 나아가 원하는 일을 상상하고 세부 내용이 덧붙여지면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게 되는 상상 팽창(imagination inflation)도 일어난다.


학생들에게 3~5세 때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사건을 들려주고, 석 달이 지난 후 다른 연구자들이 어릴 때 길을 잃은 적이 있는 사람을 조사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었던 그룹은 이야기를 듣지 않은 그룹에 비해 많은 학생이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없던 사건도 그럴듯한 상상이 덧붙여지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2012. 6. 30.,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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